[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신라 51대 왕인 진성여왕 시대, 남자 기생이 운루라는 곳에서 신분 높은 여자들을 접대한다. 오직 희락만이 있는 그 곳, 풍월은 등 따숩고 배 부르기 위해 노래하고 춤을 춘다.

프리뷰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뮤지컬 ‘풍월주’(연출 이재준)는 신라 시대 남자기생, 풍월인 열(성두섭), 열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사담(김재범), 천하를 가졌지만 열의 마음만은 가질 수 없는 진성여왕(구원영, 최유하)의 엇갈린 사랑을 담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진성은 열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열은 사담과 함께하기만을 바란다. 그렇기에 그는 임신한 진성의 입궁 명령에도 요지부동이다. 결국 진성은 사담을 협박해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한다. 이에 사담은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되고 모든 이들은 슬픈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이 극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안식을 찾고, 사랑 때문에 헛된 욕심을 부린다. 또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버린다. 머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열에게 집착하는 진성도, 진성을 모시는 운장어른(김대종)도, 서로만을 바라보는 열과 사담도. 사랑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이로 인해 파생된 슬픔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 배우, 작품을 이끄는 힘

성두섭과 김재범은 현재 대학로 뮤지컬판에서 가장 핫한 배우로 손꼽힌다. 두 사람은 ‘풍월주’를 이끌고 있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공할만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성두섭은 감미로운 넘버, 절도 있는 검무까지 완벽히 소화해 내며 열을 진성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인물로 구축해냈다. 특히 극 마지막 부분 사담을 위해 추는 춤과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슬픔을 터트리며 오열하는 모습은 열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사담 역의 김재범은 눈빛부터 처연하다. 부서지는 모래알처럼 푸석거리는 사담의 마음을 김재범은 애달픈 눈빛과 표정에 가득 담아냈다. 손 끝 하나에도 슬픔의 감정이 실린다. 하지만 자신을 협박하는 진성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사담이 유약하기만 한 인물이 아님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운장 어른 역을 맡은 김대종의 감정 연기 또한 일품이다. 진성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물론 운루를 이끄는 인물로 절대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또 궁곰 역의 원종환은 극에 깨알 같은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으며 존재감을 확실시 한다.

진성 역의 최유하는 대사처리가 불안하고, 여왕다운 느낌이 부족한 대신 열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여린 여인의 분위기가 난다. 이에 반해 구원영은 정사로 인해 피곤해진 마음을 열로부터 위로 받으려 하는 여왕다움이 강하다.


◆ 상징으로만 구현된 불친절한 무대와 조명

온 천지가 다 검은 색이다. 무대 위에는 4개의 단과 계단이 있다. 이 곳은 진성이 통치하는 세상이다. 이재준 연출은 이 무대의 콘셉트를 미로로 잡았다. 상대의 마음을 얻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 가질 수 없는 마음을 가지려 하는 사람들의 엇갈림을 무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그리고 4개의 단은 대본에 나와 있는 장소를 모두 표현하고, 등장인물들의 계급, 높이에서 오는 위기감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실체가 아니라 상상을 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불필요해 보이는 동선들이 너무 많아 집중도가 떨어진다. 또한 계단 이동이 많아 불안함도 가중되며 높은 곳에서 진행되는 장면은 올려다봐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은 의상은 신선하나 이질적이고, 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따라 조명 때문에 관람 자체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제작진의 세심함이 부족해 아쉽다.

뮤지컬 ‘풍월주’는 지난해 초 CJ 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작품으로 선정된 뒤 리딩 공연을 통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 인기에 힘입어 이 뮤지컬은 프리뷰 공연 티켓 오픈 5분만에 2,400장의 티켓을 매진시키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풍월주’는 많은 여성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부 마니아들로 인한 반짝 인기로 끝나지 않으려면 극적으로 많은 수정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풍월주’는 김재범, 성두섭, 신성민, 이율, 최유하, 구원영, 김대종, 신미연, 임진아, 원종환 등이 출연하며 7월 29일까지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