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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한석규의 썩 괜찮은 '가짜 놀음' [인터뷰]

2017. 03.23. 10:20:24

프리즌, 한석규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배우 한석규가 오랜만에 인터뷰 석상에 섰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파바로티'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긴 시간 동안 쌓아뒀던 이야기들이 허심탄회하게 흘러나왔다. 한석규는 마치 부메랑처럼, 멀리 돌아가도 결국 정곡을 찌르는 답변으로 '진짜'를 이야기했다.

'프리즌'(감독 나현·제작 큐로홀딩스)은 감옥을 넘어 세상까지 자신의 손 안에서 굴리려는 야욕을 가진 교도소의 절대 제왕 익호와 검거율 100%로 유명했지만 뺑소니, 증거 인멸 등으로 입소한 전직 경찰 유건(김래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한석규는 익호 역을 맡았다.

한석규와 '프리즌'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 감독이 제작을 준비하던 영화가 투자 단계에서 무산되고, 이후 새롭게 쓰게 된 시나리오가 바로 '프리즌'이었다는 것. 일련의 과정들을 '좋은 인연'이라는 단어로 설명한 한석규는 "나 감독이 나에게 시나리오를 다시 줬다는 게 기뻤고, 글이 단숨에 읽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모두 읽고 가장 먼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한석규다. 극 중 익호는 잔혹함을 무기로 극 중 교도소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는 인물이다. 같은 죄수자들은 물론이며 교도소장까지 제 손안에 넣고 굴리는 인물인 데다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적의 눈알을 파내는 일마저 망설임 없이 해내는 잔혹함을 지닌 캐릭터다. 그간 한석규라는 배우가 연기해 온 캐릭터들과는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석규는 "내가 입기에는 쉽지 않은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종암동 출신의 '서울 놈'이고 사투리를 쓰며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서울 토박이가 사투리를 쓰며 연기했을 때 느끼는 어색함이랄까, 영화 '베를린'에서 영어 연기를 했을 때의 어색함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막연히 연기가 불편하겠다는 공포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배우로서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도전을 했다. 결국 연기가 내 일이니까"라는 설명도 덤덤하게 덧붙였다.

이처럼 첫 만남이 순탄치 않았던 익호라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서, 한석규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도움을 얻었다고 했다. "인물을 구현할 때 여러 경로로 도움을 받는다. 때로는 어떤 단어나 동물일 수도 있고, 이번에는 하이에나의 세계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참조했다"며 말문을 연 그는 "수놈 하이에나는 무리의 최하층이다. 천덕꾸러기인데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 다른 무리를 계속 기웃거린다. 그 모습이 익호랑 닮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무리에서 쫓겨 나갈 때 상처를 입은 하이에나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입이 찢겨 나가고 눈알이 하나 빠지는데도 살아있더라. 그게 익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며 "익호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나 감독에게 '익호도 한쪽 눈을 없앨까?'라는 황당한 제의를 하기도 하고, 인물을 만들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며 쉽지만은 않았던 창작의 순간을 회상하기도 했다.


지난 1990년 KBS 22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한석규는 이듬해 탤런트 공채 20기를 통해 배우가 됐다. 성우를 거쳐 어느덧 데뷔 27년 차 배우가 됐고, 업계에서는 같은 작품에서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영광으로 여겨지는 대선배가 됐다. 하지만 "요즘에야 비로소 내 연기가 좀 봐줄 만 해졌다"며 겸손한 말을 내놓는 한석규다. 소위 자신의 '인생 작품'이라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도 80점이라는 다소 짠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예전에는 제가 연기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어요. 눈빛이 멍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마흔 살이 넘어가니까 요새는 좀 연기가 봐줄 만 해졌어요. 관객의 입장에서 내 눈을 보면 이제야 사연이 담긴 것 같고, 눈에 뭔가 담아낼 줄 알게 된 것 같죠. 나이를 먹으니까 자연스레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연기에 대해 늘 '아쉽다'는 평을 내놓는다는 한석규다. 뒤이어 연기란 완성의 단계가 없고, 굳이 애써서 완성시킬 필요도 없이 그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만의 지론이 펼쳤다. "젊었을 때는 뭔가 이뤄내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는데, 하나의 업적을 완성해 내는 것이 어느 순간 별 게 아니게 되더라. 지나고 보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꾸준히 연기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거였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냥 나이를 먹으면서 자식도 낳아보고 죽음도 보고 하니까, 삶에 머물러 있던 시선이 자연스레 죽음 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더라. 그러다 보니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는 한석규. 그는 그마저도 '괜찮다'고 했다. 그 또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결과물이라고 했다.

"1964년에 태어나 서울 종암동, 우리 집의 막내로 살아온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 일례로 초등학교 때는 폭력적인 남자 선생을 만나서, 지금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이 매일 이어졌죠. 그건 1974년이라 가능했던 폭력이었어요. 그런 시간과 시대를 산 내가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잖아요? 예전에는 내 한계를 깨기 위해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해봤는데, 결국은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이제는 새로운 걸 찾는 게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세계관을 더욱 견고하게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 같아요."


때문에 계속 '플레이어'이고 싶다는 그다. "한국 영화에서 아직 못 이룬 게 많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성과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무대가 주어지고 내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게 감사하다. 내가 복이 많은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배우로서의 삶을 끝없이 이어갈 그에게 마지막으로 '배우'라는 직업의 정의에 대해 물었다.

"배우라는, 제가 하는 일은 가짜를 통해 진짜의 정곡을 찌르는 거예요. 한때는 내 연기가 모두 가짜라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죠. 중요한 건 이 '가짜 놀음'이 꽤 괜찮다는 거예요. 가끔은 '진짜' 이야기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게 '가짜'로 해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다만 가짜를 이해시키기 위해 쉽고 정확하게 연기하는 건 어려워요. 모두가 알아먹을 수 있는 연기를 계속해나가는 것, 그건 대단한 일 아닐까요?"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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