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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 연상호, 언젠가 올 그날을 기다리며 [인터뷰]

2026. 10.19. 15:30:00

실낙원 연상호 감독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쉼 없는 다작 활동으로 실망과 기대를 오가고 있다. 언젠간 그 실망의 임계치가 넘어 더 이상 창작할 수 없는 순간을 내심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올 은퇴의 순간을 기다린다지만, 연상호 감독의 머릿속에는 우리의 구미를 당길 만한 소재들로 가득해서 그날이 오기란 아직 까마득하다.

21일 개봉되는 영화 ‘실낙원’(감독 연상호)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모친이 쓴 3장 분량의 글에서 시작됐다. 나쁜 짓만 일삼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심리와 선택을 다룬 글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그 글 속 어머니의 심리에 대한 궁금증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모친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졌다. 모친의 아들로 49년 가까이 살았지만, 정작 모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파고 또 파고들었지만, 그 심리를 알기란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그 심리가 인간의 실존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으로 뻗어나갔다. 극 중 류소영이 9년 만에 돌아온 아들 류선우에 대한 마지막 선택이 그 실존과 관련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는 연상호 감독이다.

여기에 연상호 감독은 몇 년 새 전 세계 화두로 떠오른 AI 소재를 접목시켰다. 연상호 감독은 “실존주의 문학들의 고민이 AI 시대의 중요한 질문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실낙원’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던 2020년 만 해도 AI 문제는 우리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막연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몇 년 새 AI의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관련 문제들과 고민들은 금세 우리의 피부에 확 와닿고 있다.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우리 세상은 사색이 있는 곳이다. 그 사색 덕분에 행복하기도 하고, 고통받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재밌다고 생각했다”면서 “AI 시대에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했다.

이어 연상호 감독은 “소영의 마지막 선택을 두고 하는 이야기의 주제 자체가 실존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걸 제공하는 엔터테이닝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연상호 감독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예로 들었다. 대학 시절에는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왜인지는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 저는 그것이 인간의 정체성과 연관이 있다고 봤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을 하고 분석하는 건 AI가 잘하는 것이다. 다만 정확하게 이해는 안 되지만 공감이 가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류소영의 마지막 선택을 그 방향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실존을 향한 연상호 감독의 사색은 AI의 발전상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는 “AI의 성능이 갈수록 우수해지고 있다. 보편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연상호 감독은 AI를 보편성의 끝으로, 예술을 독창성의 끝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과연 보편성이 독창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며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이 독창성을 가질 수 있냐는 것인데, 저는 될 수 있다는 쪽이다. 물론 거기에 더 독창적인 무언가가 들어가야 하겠지만 말이다”라고 덧붙이며 기술과 예술이 결합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실낙원’의 제작비는 5억 원 규모다. 이는 지난해 개봉해 뜻밖의 흥행을 거둔 영화 ‘얼굴’의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됐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이후 여기저기서 작품 제안이 쏟아질 때, 한 투자사가 ‘얼굴’을 원플러스원으로 하자고 제안했었다. 그게 싫어서 오랫동안 안 하다가 결국 너무 하고 싶어 만들게 됐는데, 그 영화를 100만 명이 넘게 보더라. 그게 나에게는 일종의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물론 ‘실낙원’ 역시 100만 관객을 넘을 것이라 속단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상업성보다는 담론 형성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얼굴’에서 얻은 깨달음 덕분에 상업성 보다는 어떠한 담론을 제공하는 목적에 더 무게감을 두고 있는 ‘실낙원’을 만들 수 있었다면서 “너무 좋다. 마음 같아서는 1년에 한 번씩 이런 작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못할 것 같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연상호 감독은 최근 몇 년 새 연출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 각본가로서 쉴 틈 없이 작품을 내놓으며 한국 영상 콘텐츠계의 대표적인 다작 감독으로 불린다. ‘군체’, ‘가스인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나친 다작으로 인해 한 편 한 편의 퀄리티가 떨어져 실망감을 표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연상호 감독은 그러한 대중의 냉정한 평가를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연상호 감독은 “그 실망감이 임계치를 넘어가는 순간 자동 은퇴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연상호 감독은 “그건 창작자의 숙명과도 같다. 다작을 하든 적게 하든 임계치는 자동 조절되는 것 같고, 나는 그 자연스러운 결과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쉼 없이 다작을 이어가는 것일까. 연상호 감독은 최근 유튜브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을 보며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유튜버들은 되게 빨리 작품을 내놓고 실시간으로 댓글을 확인한다. 관객들의 소리를 즉각적으로 체감하고 수정을 빨리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라며 “최근 유튜버 출신 감독들이 대중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도, 대중의 목소리를 빨리 듣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연상호 감독이 선택한 영화 작업 방식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작업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혼자 집에 있다고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며 “일단 내놓고, 대중의 반응을 빨리 듣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중과 치열하게 소통하며 영감을 얻겠다는 그에게 아직 은퇴의 시간은 멀어 보였다.

“실망의 임계치가 넘어가서 작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순간을 기다려요. 언젠가는 그 순간이 분명히 오겠지만, 일단 올해는 아닌 것 같아요. 내년도 아니지 않을까요? (웃음)”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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